말 없이 간다. 가는 길 아스라이
김제 들녘이 넓다. 강 가장자리 쪽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헐벗게 움츠린 만경강은 숨을 쉰다. 그 숨소리 거칠다.
이 비좁은 길의 끝에
닿으면 백련이 핀다고 했다. 이제 연밥이거나 끝물의 백련만 남았겠다. 진짜 밥말고 이 나라의 음식 중에 ‘밥’이 따라 붙는 건 연밥밖에
없다던데, 좁아진 강폭을 보니 연밥이 꼭 만경강의 선문답 같다. 꽃이 지고 연밥이 연잎의 끝에 매달리듯 강폭이 좁아지면 들은 더 넓어진다. 벼가
자란다.
매년 이맘때쯤 연꽃보다 아름다운 연밥이 핀다는 김제 청운사(청하면 대청리). 가서 보니 정말 알겠다. 꽃보다 꽃 지고 남은
자리가 더 아름답다. 연밥은 꽃 속에서 꽃잎과 같이 자란다. 꽃잎이 지고 나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백련은 어느새 지고 그 자리에 연밥만
남았다. 또 거기 연꽃보다 아름다운 생각들이 놓여져 있다. 그 절에 사는 도원스님이 그렇고, 아무나 발 들여놔도 편안한 무량광전이 그렇고,
절집의 곳곳에 놓여있는 섬세한 문화들 또한 같은 형상의 생각이다.
역시나 그 절 참 독특하다. 주지스님 역시 만만치 않다. 선계와
속계의 경계에 서서 받아들이는 만큼 베푼다. 분명 여느 절과 다르다. 부러 마음 경건해질 필요 없다. 부담도 사절한다. 편한 마음 그대로 떠날
때까지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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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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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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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함께 연밥 따고 연차
만들고
하소백련축제가 끝났다. 그 절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다. 알고 갔다. 연꽃을 보러 간 길이 아니었다. 연밥이나 보고
스님이나 만날 요량이었다. 근데 또 사람 마음 간사하다. 막상 끝물의 백련 꽃 몇을 눈에 담았더니 저 넓은 연못에 백련이 가득하면 어떨까 그게
궁금하다. 보고 싶기도 하다.
청운사의 연밭은 넓다. 지금은 조금 못 미치지만 1만여 평을 목표로 계속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연꽃들은
모두가 백련이다. 아쉬운 마음 여기 와서 달래라는 것일까. 무량광전 바로 앞 작은 연못엔 홍련이 피었다. 이제 갓 꽃잎을 밀어 올리는 중이다.
그 절에서 백련이 피기 시작한 지 6년이 되었다. 도원스님이 말하길 사람을 들이기 위해 심었다 한다. 절이 좀 편해지라고. 그 꽃
보기 위해 다른 마음 갖지 말고 그냥 오라고 심었다. 사실 절집들이 좀 무겁긴 하다. 아산 인취사에서 뿌리 8개를 가져다 심었고, 불심보다 객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덕에 절집이 온통 연잎으로 뒤덮였다.
그런 마음도 있었다. 농촌이 살기
어렵다 하니 인근의 농민들에게 대안을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씀이 곧 생산불교일 것이다. 부처의 삶 또한 그러했다.
꽃이 지고 이맘때면
연잎을 따기 시작한다. 그걸로 연차를 만들고 고추장에 된장도 담근다. 국수도 뽑는다. 생산성이 높다. 연밥은 또 어떤가. 연밥 한 알에 콩 열
다섯 개만큼의 영양소가 들어 있다. 청운사에서는 꽃이 핀 개수만큼 연밥이 생긴다.
연의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깊이만큼 절의 생각이
깊다. 연은 진흙 속을 자꾸 파고들어 기어이 맑은 물을 만나면 꽃을 피운다고 했다.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실제로 연의 뿌리가 맑은 물을
찾는 건 사실이다. 어떤 연은 뿌리가 10m씩 땅을 파고든다. 그러므로 연은 결코 진흙 속에서 사는 게 아니다. 껍데기만 보면 안 된다. 본질에
접근했을 때 연꽃이 핀다. 그것이 연의 사상이고, 청운사가 세상에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 절의 백련은 이름도 독특하다. 연꽃이
자라는 못은 하소(蝦沼)이고, 꽃의 이름은 하소백련이다. 그 이름 스님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지었다. 조금 난데없다. 청운사 뒷산은 그 모양이
새우가 등을 구부린 형상이다. 구부러진 새우의 등에 절이 있고, 등의 반대면 그러니까 배 쪽에 연못이 있다. 자다가 일어나서 “에라, 모르겠다.
하소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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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양옆을 호위하는 화석. 화석은 부처님보다 오래된 지 구의
말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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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들을 곁에 낀 부처님…모두에게
열린 무량광전
하소에 핀 백련은 백년을 간다. 한번 피었으니 오랫동안 지지 않을 것이다. 절의 뜻이 그러하다. 그 절
120년 전에 지어졌다. 도원스님의 할아버지가 처음 지었고, 아버지에게 이어졌으며 꼭 10년 전 스님에게까지 이음새가 연결됐다. 그는 대처승의
아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판승(事判僧)이다. 일하면서 수행하는 스님이다. 그 일이란 결국 다른 생각이다. 무량광전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량광전은 부석사 무량수전을 꼭 절반으로 줄여 지었다는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배흘림기둥은 밋밋하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건대
청운사에서는 모양이나 격식은 중요하지 않다. 자유롭다. 무량광전 안에는 수많은 화석들이 전시돼 있다. 물고기, 암모나이트, 공룡알. 부처님
양옆을 호위하는 것도 오래된 화석이다. 누구는 그 모양을 보고 블랙코미디라고 했지만 화석은 부처님보다 오래된 지구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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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무량수전을 꼭 절반으로 줄여 지었다는 무량광전. 그 안에 청운사의 ‘다른
생각’들이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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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누구든 그 안으로 다
들어올 수 있다. 열려 있다. 무량광전은 법문처럼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기쁨’의 공간이다. 신부나 목사가 와도 좋고, 살인자가 와도 괜찮고,
몸 파는 여자가 오면 더욱 좋다. 부처님의 말씀들이 결국 그러하다.
밖으로는 사진이 결렸고, 시가 걸렸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꼭
불경소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면 족한 것이다. 솟대를 걸고, 범종은 겨우 앉아서 칠 수 있게 작고, 이미 화석이 된 오래
된 나무들이 절 마당에 즐비하다. 계단을 오르면 정말로 무량광전 절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크기의 대웅전이 있는데, 그 안에는 또 티벳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너 편한 대로 왔다가 그냥 너 편한 대로 가란다.
누구든 그냥 들어가서 보라는 마음씀인데 말만 그러는 게
아니다. 절 전체의 꾸밈이 격식 없고, 자유분방하며 제 멋대로 흐른다. 절 입구에는 장승이 서 있고, 아무 곳에나 터를 잡고 조각 작품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합장을 올리지 않는다 해도 전혀 부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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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마당에 놓인 조각품. 용인지 물고기인지 미꾸라지인지 구분이 안 된다. 굳이
가려낼 필요 도 없다. 보고 즐거우면 그만, 그것이 청운사의 사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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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화장 도원스님의 탱화 속 글자는 모두
한글
그 마음의 정점이 무량광전의 탱화다. 도원스님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7호 탱화장이다. 스스로 직접 그렸다. 얼핏
보면 다른 절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르다. 문양이나 색채를 중심에 두지 않고 경(經)을 그렸다. 경은 부처님을 따르는 말씀이다. 아미타경,
관무량수경, 무량수경. 이것들은 정토삼부경이다. 글자는 모두 한글로 썼다. 한자를 꼭 써야 한다면 먼저 한글로 쓰고 그 옆에 적었다. 누구라도
읽고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런 탱화 처음 만났다. 폼잡지 않는 탱화가 청운사에 있다.
스님과 작별하고 청운사를 돌아 나오는 길,
날이 흐리더니 기어코 비가 내린다. 우화(雨花)라 했다. 그리고 ‘꽃비’라고도 했다. 비는 꽃처럼 내리고, 꽃은 또 비처럼 날린다. 비와 꽃은
닮았다. 돌아보면 거기 연꽃 같은 절이 있다. 백련과 절도 닮았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 인터체인지→익산·군산방향 26번 도로를 타고 25분 가량 직진하면 만경교 교통안내소→계속 직진하면 청운사로 향하는 만경강 제방길→7.5km
직진하면 나오는 석상마을에서 좌회전→농로길을 타고 2.8km 직진하면 청운사 입구
전라도닷컴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