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전남 장흥 ‘겨울별미’ 매생이

시누대 2006. 2. 21. 18:26
 
▲ 전남 장흥군 대덕읍 내저리 바닷가 갬바우벌에서 주민들이 대나무발을 들춰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다. 매생이 채취는 2월말까지 이어진다.

‘정남진’ 전남 장흥. 한겨울 장흥 바닷가 미각의 주제는 매생이다. 겨울 장흥 땅에 발 들여놓은 여행객치고 매생이 공세를 피해갈 사람 아무도 없다. 매생이가 뭔가? 죽이라면 죽이고 국이라면 국이며 반찬이라면 반찬인 음식이다. 12월말부터 3월초까지 식당마다 끼니마다 밥상 한복판을 장식한다. 진초록 빛깔에 걸쭉한 질감, 부드러운 맛과 향기로운 갯내음을 지녔다. 미식가들이 겨울 남도의 최고 별미로 꼽는 음식, 바로 매생이국이다.

“매생이 맛있는걸 서울 사람이 다 알아놨으니 인자 물량이 딸려 큰일 나부렀소”

‘웬수’가 마을 효자로

대표적인 매생이 생산지인 장흥군 대덕읍 내저리 갬바우벌로 가는 길가의 들판은 매서운 한파와 눈보라에도 아랑곳없이 벌써 봄빛이다. 보리며 마늘 따위 새싹들이 돋아 초록 융단을 이뤘다. 내저리 바닷가에 이르면, 얕은 바다 위로 또 다른 초록 융단이 펼쳐진다. 진초록 매생이가 들러붙은 대나무발이 앞바다를 메우고 있다. 갬바우벌 매생이 채취장이다. 갬바우란 옛날 개펄 가에 고욤을 얹어놓고 깨 먹던 바위가 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어촌계 주민들은 요즘 매일 아침 갬바우벌에서 매서운 추위와 거센 바닷바람을 견디며 매생이 채취에 여념이 없다.

몇년 전까지 주로 김을 양식하던 주민들에게 매생이는 “웬수 겉은” 존재였다. 김발에 매생이가 올라붙으면 그 발 주인은 사색이 됐다고 한다. 매생이가 섞인 김은 절반값도 못 받기 때문이었다. 내저리 주민 박만수(69)씨가 손을 내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김발에 매생이가 올라오믄, 그 발 농사는 끝나버린 것이여. 칼로 긁어내고 뜯어내도 안돼부러야.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닝께에.”

그랬던 매생이가 이젠 김과 구실을 바꿨다. 박씨가 덧붙였다. “인자는 매생이발에 김이 붙으면 난리가 나불지이.” 김이나 파래가 섞인 매생이는 값이 뚝 떨어진다. 매생이는 이제 마을 주소득원이다. 지난해 겨울 석달 작업으로 내저리 어촌계는 15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내저리 주민들은 여름엔 농사를 짓고 가을부터 매생이 채취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상강(10월23일) 전후에 대나무발을 얕은 바닷가 자갈밭에 깔아 매생이 포자 채묘작업을 한다. 한달쯤 뒤엔 수심 2~의 안바다에 말장(대나무 말뚝)을 박고, 포자가 달라붙은 발을 수평으로 묶어놓는다. 3m짜리 발 열개를 한 ‘때’ 또는 ‘척’이라고 한다. 이번 겨울 내저리 갬바우벌엔 지난 겨울보다 100여 때가 늘어난 770여 때를 ‘막았다’(설치했다).



본격 채취는 12월20일께부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진다. 물때에 따라 작은 배를 타고 나가거나, 장화를 신고 들어가 발을 쳐들고 손으로 훑어낸다. 3월 이후엔 매생이의 “자클한(부드럽게 풀린) 맛이 사라지고” “까랍고(거칠고), 뻐셔진다(억세진다).” 색깔도 갈색으로 바뀌어 매생이철이 끝나감을 알려준다.

바닷가 속풀이 음식이 한정식집 별미로

매생이는 우리나라 남해 얕은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갈파래과에 속하는 녹조식물이다. 개체의 올이 파래나 김보다 훨씬 가늘다. 남해안 중에서도 장흥·완도·고흥·강진·해남 등이 주산지다. ‘자산어보’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엔 ‘매산태’ ‘매산’으로 적혀 있다. 나이 든 주민들은 지금도 ‘매산이’라고 부른다.

남도 어민들은 매생이를 국으로 끓여먹어 왔다. 옛날엔 돼지고기와 함께 끓여 먹었다지만, 요즘은 주로 굴을 넣어 끓인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 한그릇 후루룩 들이키면 어지간한 숙취는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술 깨고 속 다스리는 덴 매생이국이 첫째여. 맛도 첫째고 영양가도 첫째랑께.” 숙취 해소말고도 위궤양·변비·혈압 강하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다.

일부 바닷가 주민들만 즐기던 겨울 별미 매생이국이 최근 서울 등 대도시 일부 한정식집 기본 차림에 등장하면서, 찾는 이가 부쩍 늘고 있다. 겨울철 상온에서 3~5일밖에 보관이 안돼 겨울에만 먹어왔으나, 요즘은 급랭기술 개발로 사철 끓여내는 식당도 많다. 하지만 역시 음식은 제철이라야 제맛이 난다.

헝클어진 실타래가 곱게 빗은 머리 모습으로

 

 

 

 
33가구가 참여한 내저어촌계 매생이 공동작업장. 매생이를 갯물에 헹궈 김·파래를 골라내고, 물기를 짜 주먹 크기의 덩어리를 만들어 상자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다.

물에 헹궈낸 매생이 덩어리 모양은 꼭 곱게 빗어넘긴 여성의 맵시있는 뒷머리를 닮았다. 이것을 한 ‘재기’(잭이)라고 한다. 한 재기는 400g. 날랜 솜씨로 재기를 만들어 쌓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딱 잡으믄 딱 400g 나와불지라.” 한 재기는 되직한 국으로 끓이면 4~5인분이다.

매생이 덩이는 상자에 담겨, 기다리고 있던 중간상인들에게 넘겨진다. 가격은 그날 작업량과 최근 수요 등을 감안해 중간상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2월3일 소매가는 3000원, 도매가는 2500원. 1월초엔 4000원 안팎이었다. 택배 주문도 받는다.

장흥읍의 한 식당 주인이 말했다. “매생이 맛있는 걸 서울 사람 다 알아놨으니, 인자 큰일 나부렀소. 지금도 물량이 딸리는디.” 내저리 어촌계 (061)86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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