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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마일'이 잘 안돼서 걱정이라는 최삼숙씨. 하지만 산나물 앞에 선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오나 보다. |
ⓒ 전라도닷컴 | 12월 중순부터
2월말까지는 문닫는 식당이 있다. 그때는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어도, 10여 년 햇수를 헤아리는 단골이어도 이 집 밥을 먹을 수
없다. “봄 되면 오십시오.” 주인아저씨 말이 그렇다. 이윽고 봄 되면 단골들이 “오매 겨울이 징상스럽게 길어부렀네” “몇 년은
기달린 것 같네” 하며 하나둘 다시 찾아든다.
봄과 함께 문 여는 식당. 지리산 정령치 아래 ‘에덴식당’(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이다. “산에서 풀 뜯어다 팔아먹는 도둑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최삼숙(58)씨가 주인. 이 집에서 내는 밥상은 ‘산채’가 주를
이룬다. 겨울엔 문닫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에 올리는 나물이 다 내가 산에 가서 뜯어다 말려서 내는 나물인데 겨울 되문 낼 나물이 남아
있가니.” 그러면 시장에서 좀 사다 하시죠라든가, 봄에 좀 더 많이 준비해 두시죠라는 말은 소용없다. “내 손으로 해낼 수 있는
한도만 해야제”가 그의 대답이다. “그 이상 더 하려 하는 것도 욕심”이라는 말이다.
산채 말고 옻닭·백숙도 있건만 굳이 문을 닫는
이유는 또 있다. “닭만 먹으러 오는 사람은 소수자여. 가령 네 명이 오문 두 명은 산채, 두 명은 닭을 먹는 식이제. ‘산채가 없으니 닭을
드십시오’라고, 나는 그렇게는 못혀. 묵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변동하문 되가니. 아예 문을 닫고 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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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내 손으로 해낼 수 있는
한도만 해야제” 봄이면 마음 달뜨는 것은 ‘나물 캐러 가는 동네 처자’가 아니라 그이다. 이 ‘나물 캐는 남정네’는
새벽 4시면 벌써 큰 배낭 하나 메고 지리산에, 백운산에 들어 있다. 아침 11시가 되도록 산 속을 헤매고 다닌다. 봄 한철 하는 일이라
게으름 피우거나 하루 쉴 새도 없다. 30∼40kg 되는 배낭을 메고 산 속을 다 더트고 다닌다. “일로만 늙은 사람이어서 일이 안
무서워.” 식당 열어온 지가 15년을 헤아리니 그만큼의 봄을 산에서 보낸 셈이다.
“타관에서 막일하며 떠돌다 본께 ‘이제 좀
순하게 살자’ 싶어져. 그래서 고향(그의 고향은 ‘흥부마을’로 널리 알려진 아영면) 가차운 디 들와서 노풋하니(높직하니) 집을 하나 지었어.
여그가 내기(內基)마을인디 옛날에는 ‘안터’라 혔어. 안에 들오면 나갈 디가 없단 말이제. 그만큼 짚은 곳이었어. 근디 집 앞으로 길이
뚤버져붓어. 길 난께 사람들이 왔다갔다 함서 식당을 하라고 그래. 첨에 식당 할 때는 뭐 잘했가니. 손님들이 다 갈켜줘. 요것은 요렇게 해야
맛나다, 조 집에 간게 뭘 너서 해주더라…. 열 사람이문 벌써 열 가지를 배우는 거잖애. 이날 평상 귀담아 배웠제.”
상위에
올라온 음식들은 말린 나물들이라 색깔이 비슷비슷하다. 모두 거뭇하다. 눈으로 홀리진 않는다. 먹어봐야 비로소 제 향과 맛이 입 속으로 감겨든다.
쌉싸름하고 향긋하고 달큰하고…. 고루 섞어 비벼 먹으면 ‘맛의 합창’을 이룬다. 지리산 백운산 기운 담긴 그 질박한 향과 맛을 잃지
않도록 아내 안경님(51)씨는 양념맛이 ‘넘치지 않게’ 한다. “지 본색대로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걸로 지대로 해야제” 그가 상에 올리는 산나물은 ‘적어도 여덟 가지’. “그 정도는 해야 성이 차서” 스스로
정한 원칙이다. “나도 산채정식 내놓는 집들 여그저그 묵으러 다녀봤어. 근디 가보문 산채는 서너 가지에 딴 밑반찬들만 많이 나와.
그래놓고 산채정식이요 하는 집들이 많더만. 중국산도 예사로 내놓고….” 고사리만 하더라도 중국산과 우리 것의 값은 천지차. 그래도 산채백반
1인분에 5000원이란 가격을 주욱 지켜오고 있다. “우리 땅에서 나는 걸로 지대로 해야제”하는 고집이 매년 봄 산에 들어 손품 발품 팔게 하는
힘이다. 올 봄엔 비비추, 게발딱지, 명아주, 쑥부쟁이, 곰취, 취, 고추나물, 고사리가 ‘여덟 가지’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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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평 방에 갈무리해둔 온갖 산나물들. 향이 기분좋게 달겨든다. |
ⓒ 전라도닷컴 | “곰취는 잎이 넓고
커서 몇 포기만 해도 부자된 것 같애. 향기도 좋아. 겨울잠에서 깬 곰이 향에 취해 뜯어먹는다는 말도 있잖애. 연한 잎은 바로 쌈 싸먹어도
맛나제. 명아주는 천식에 좋다네. 줄기로 지팽이 만들문 가볍고 단단해서 좋다는 바로 그 명아주여. 비비추는 냄새도 안나고 무(無)맛이여.
양념맛으로 묵제. 여그선 지보라고 불러. 우리 클 때만 해도 흉년에 다른 나물은 많이 먹으문 부황이 난디 지보는 부황이 안났어. 게발딱지는
노랑내가 나서 쇠고기나물이라고도 불러. 좀 애릴 때 뜯어야만 노랑내가 덜 나….” 산나물이야기가 끝이 없다. 뜯어온 나물들은 열여섯
평짜리 방에 불 때서 바로 말린다. 조금만 놔두면 부드러워서 금방 떠버리기 때문이다. 잘 말려서 갈무리해 두면 몇 백 마지기 농사지어 놓은
것처럼 든든하단다.
#“즐겁게 잡숫고 가문 넘다 흐뭇혀” “산나물에 파묻혀 사니까 나긋나긋할 것
같애도 내가 성질이 드러운 사람이여”라고 그는 스스로 실토한다. “항상 쓰마일하고 일해야 된디 잘 안돼. 도시 음식점 가면 문 앞에서 절도
하고 근디 나는 그 으리으리한 음식점 변솟간만도 못한 디서 장사를 함서도 내 꼬라지대로 살아부러.” 그 꼬라지 부리는 경우란 ‘나물 많네.
뭐, 다 중국산이겠지’ ‘옻닭 진짜 맞냐?’ 같은 의심섞인 말들 앞에서다. “마음을 몰라주문 속상해. 믿게끔 해 주문 믿어야제. 나는 밥
팔아묵는 사람이제 양심을 팔아묵는 사람은 아닌디 말여.”
옻닭도 이 집에선 두 시간 전에는 예약해야만 먹을 수 있다.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문 나는 못해 줘. 옻나무 장작 포옥 삶아서 배 들라문 두 시간은 과야 혀. 옻나무를 통째로 짜개문 나무속이 노란디
이 성분이 간에 좋다네. 옻피만 너면 더 간단하고 빠르겄제만 이왕이문 간에도 좋단 디로 해야제.” 그가 식당 일을 하며 제일 즐거운 때는
다 먹은 그릇 포강포강 쌓아서 챙겨 들고 갈 때. “즐겁게 잡숫고 가문 넘다(너무) 흐뭇혀.” 남김없이 비워진 그릇을 포강포강
탑처럼 쌓게 되는 것은 이 집 단골들이라면 거개 갖고 있는 버릇. 손님들 뜬 자리마다 탑들이 세워져 있다. ‘잘 먹었노라’는 무언의
인사다. “혹시나 냉겨져 있으문 진짜로 아까워.”
‘산에서 풀 뜯어다 팔아먹는 도둑놈’이 산에다 미안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나물 하나하나에 손이 일고여덟 번 간다고 한다. “뜯어오고 개리고 삶고 짜고 널고 담아서 다시 개리고 뜨거운 물에 삶아서 보드랍게
퍼지게 한 담에 다시 볶고 무치고…. 손이 몇 번 가는지 몰라.” 그래도 “아직 정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내 식구, 내 엄니가 해준
밥처럼 정성 들어간 음식은 없다”고 믿는 최삼숙씨. “그 정성에 가찹게라도 뽀짝댈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음식을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