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

순천 승주 금둔사

시누대 2006. 3. 28. 13:41

▲ 금둔사 홍매는 선비들의 흠모를 받았던 토종매화의 계보를 잇는다.

`남도에서 홍매화가 가장 일찍 핀다’는 금둔사(金芚寺).
그 어떤 수식어도 이보다 더 매력적이진 못할 것이다.
이곳 홍매화를 `납월매’라 부르기도 한다.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 그냥 매화로 부르기 아심찮아 특별히 `납월매’라 부르는 데는 추운 기운 뚫고 피어난 뜻을 기리는 마음이 담겨 있겠다.
옛어른들은 이 무렵 봄을 기다리다 못해 먼저 봄을 찾아 나섰나 보다. 바로 `탐매’(探梅). 매향을 좇아 눈길을 헤맸다.

금둔사 홍매는 선비들의 흠모를 받았던 토종 매화의 계보를 잇는다. 20여 년 전 사찰이 중건될 때 지허스님이 낙안읍성마을 고매에서 몇 그루 얻어와 심은 것이라 한다. 향이 깊고 꽃잎이 야무지다. 매화꽃 두고 “송이마다 꽃술이 총기있는 계집애 속눈썹처럼 또릿또릿”하다고 말한 이는 《무서록》의 작가 이태준.
왜매처럼 일시에 꽃을 피워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십여 송이 피었다가 추위에 사그라지면 다음 십여 송이가 망울을 터뜨리고 또 피고 지다 3월 중순 무렵 절정에 이른다.
볼 것이 매화에 그치지 않는다.

▲ 마애불·산신각·매화나무가 함께 이뤄낸 풍경. 크지 않은 것들이 이뤄낸 조용한 평화가 거기 깃든다.

눈 들면 수려한 바위산인 금전산(679m)이 둘러싸고 있고 굽어보면 낙안벌이 봄볕 속에 일렁인다.
소풍 나선 양 `보물 찾기’도 할 수 있다. 금둔사엔 보물이 두 점이나 있다. 보물 945호 삼층석탑과 보물 946호 석불비상. 모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돌이란 걸 잠시 잊게 석탑에 새겨진 조각들은 뭉글하고 부드럽고 섬세하다. 오랜 세월도 비바람도 그 아름다움을 지우진 못했다. 희미하게 뭉그러져 가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까지 겹쳐 그 아름다움이 더 절실해진다. 기단에는 음악의 신 건달바 등 8부중신이 새겨져 있다. 1층 몸돌의 앞뒷면에는 문비(門扉: 자물쇠가 달린 문짝),  양 옆면에는 불상을 향해 다과를 올리는 공양상이 있다. 수긋한 몸가짐 속에 지극정성이 배어 있다.

공양상 눈길 미치는 곳에 석불비상(石佛碑像)이 있다. 3.15m 정도의 높이. 특이하게도 비석에 불상이 조각돼 있는 모양새다. 머리 위엔 옥개석. 이처럼 완전한 형태의 석불비상은 매우 드물어 가치가 높다고 한다.

산신각 옆 바위에도 마애불이 조성돼 있다. 산신각도 마애불도 매화나무도 크기를 다투지 않고 딱 서로에 맞춘 듯 다정한 모양새다. 크지 않은 것들이 이뤄낸 조용한 평화가 거기 깃든다.

▲ 공양상 등이 아름답게 새겨진 삼층석탑(보물 945호), 비석에 불상이 조각된 석불비상(보물 946호·오른쪽사진)

과거불과 미래불을 합쳐 60분의 부처를 새긴 `불조마애여래좌상’도 만날 수 있다. 커다란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은 후 한 뼘 정도 크기의 부처를 새겨 놓았다.
쉿, 그 앞에 한 할머니가 서투른 몸짓으로 기도중이다. “도사님인지 뉘신지 이름을 잘 몰것네요. 그래도 내가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픈디 여그꺼정 왔응께 내 아픈 다리 허리 다 낫게 해주시고 우리 자식들 어디 가든 환영받는 사람되게 해주시고, 즈그들 맘 묵은 대로 다 되게 해주서라.”

▲ 불조마애여래좌상.

순정한 기도. 아마 다 들어주실 것 같다.
작은 계곡에 걸린 방하교를 건너 절을 내려온다.
`방하’(放下)는 속세의 욕심과 번뇌를 다리 아래 내려 놓고 건너라는 의미. 들어갈 땐 아무 것도 내려놓지 못했으되 매화 바라보는 새 잠시 그것들을 내려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승주나들목에서 우회전-승주읍소재지에서 선암사 방향-죽학삼거리에서 좌회전-낙안읍성-금둔사. 혹은 화순-사평-문덕삼거리(서재필기념공원)에서 좌회전-고인돌공원-낙안읍성-금둔사.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순천에서 낙안으로 가는 시내버스(0-1번)를 타고 금둔사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먹을거리: 낙안읍성 앞 민속주유소 옆에 `벌교꼬막식당’(061-754-4098)에 가면 꼬막정식(1인분=1만원)을 먹을 수 있다. 꼬막부침개·꼬막회무침·삶은꼬막·양념꼬막·꼬막된장국 등 `꼬막5종세트’가 올라오는 상차림이다.
여행쪽지
: 낙안읍성이 지척(금둔사에서 2.5km 정도)이니 함께 둘러보면 더 좋을 일. 금둔사 아래쪽에 낙안온천(061-753-0035)이 있다.

ⓒ 전라도닷컴  남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