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무안 낙지골

시누대 2005. 10. 26. 09:25
“쩌것들이 심심하믄 다라이를 넘어 부러”
무안 낙지골
정상철 기자  

 

ⓒ 김태성 기자

붉은 ‘다라이’(대야)들의 길고 오래된 행렬. 그 골목에서 바라보는 다라이들은 꼭 별자리 같다. 꺾이고 휘고 나뉘는 골목길의 흐름을 다라이들이 그대로 구현해 낸다. 틈이 없다. 골목 가장자리의 모든 공간이 별처럼 크고 작은 다라이들로 반짝 빛난다.
후각에 조금만 민감한 사람이라면 무안터미널의 첫 느낌은 질펀한 갯비린내일 것이다. 다라이들의 긴 행렬은 무안터미널에서 곧바로 이어진다. 일테면 그 다라이들이 비린내의 진원지인 셈이다. 서해바다 갯벌에서 자란 싱싱한 무안낙지가 다라이 가득 담겨 한 눈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이름하여 낙지골목 되겠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줄여서 ‘낙지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낙지에 관해서라면 모두가 천하무적
“낙지문 다 똑같은 낙지제, 뭔 놈의 것이 이라고 복잡하답디요.”
혹여 그 골목에 낙지를 사러 갔다가 크기와 종류 그리고 그때마다 천지차이로 다른 가격에 대한 불만을 이런 식으로 표출했다면 무식한 ‘놈’ 소리 듣기 딱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낙지 파는 사람이 줄줄이 모여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 골목이 낙지골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낙지에 관해서라면 모두가 천하무적이다. 30년 동안 한 가지만 팔아온 이력과 내공이 안으로 쌓였다. 그리하여 이미 낙지골목은 그 유명한 무안낙지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 김태성 기자
낙지, 한자어로는 석거(石距)라고 하며, 장어(章魚)·낙제(絡蹄)라고도 쓴다. 무안을 포함한 전라도 서쪽바다 사람들은 사투리로 ‘낙자’라고 부른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성(性)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낙지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은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정약전은 <맛이 달콤하고 회·국·포를 만들기 좋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한여름에 논 갈다 지치고 마른 소에게 낙지 너 댓 마리를 먹이면  기운을  차린다.>
솔직히 이런 사전적 혹은 지식검색 같은 정보와 낙지골목 사람들은 거리가 멀다. 그러나“열아홉 새색시 속살맹키로 야들야들한 맛”이란 표현을 듣고 나면 혀가 석 자나 나온다. 낙지 맛에 대한 이토록 적확한 표현을 들은 바 없다.

어디 그뿐이랴, 정말 그 골목에서는 낙지라고 모두 똑같은 낙지가 아니다.
“요 다라이가 모도 똑같은 놈이 아니여. 낙지가 다 달러. 인자 알집서 나온 놈은 약낙지여. 글고 쪼끔 더 큰 놈이 꽃낙지. 요라고 한 입에 들으가게 생긴 놈은 세발낙지고 백 그람은 되야사 소낙지 소리를 듣제. 땔싹 큰 놈은 대낙지, 소낙지하고 대낙지 가운디 놈이 중낙지여.”
낙지골목에서도 경력이 최고참에 드는 문옥자(57)씨가 말하는 낙지 구분법이다. 이쯤 되면 정약전이 환생해도 두렵지 않을 듯하다.

무안천 냇가에서 낙지 팔던 ‘다라이 할매’들의 30년 세월 스민 골목
“원래 요 골목에 사람이 바글바글한디 요새는 좀 뜸해, 낙지가 워낙에 안 나와. 가격이 금인디도 없어서 못 팔아 묵어.”
낙지도 철이 있고 봄과 가을이 제 철이다. 게다가 그물로 낙지를 잡는 ‘고대구리’배 조업 단속에 물량이 딸린다. 한 여름에는 서울에서 무안낙지 한 번 먹어볼 요량으로 그 골목까지 내려왔다가 헛걸음하고 돌아간 사람도 여럿 있었다.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봄, 가을 흔할 때는 1000원 꼴인 세발낙지가 3000원, 소낙지 한 마리가 5000원, 자세 나오는 대낙지는 한 마리에 만원은 건네야 거래가 된다.
곽경재(43)씨는 “비싸다고들 해싼디 어짤 수 없어. 고대구리 배가 못 뜨문 전부 맨손으로 잡아야 써. 그려도 인자 콧등에 솔솔 찬바람 불어온 거시 쪼까 있으문 가격이 톡 떨어질 것이여”라고 말했다.

 

ⓒ 김태성 기자

이쯤 되면 그 골목의 내력이 나와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 골목에 낙지 다라이들이 줄지어 늘어선 건 아니다. 한 20년쯤 전 그곳은 냇가였고, 무안천 복개도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골목이 형성됐다. 당시 무안천 주변으로는 큼지막한 다라이에 낙지를 담아 파는 ‘아짐’과 ‘할매’들이 모여 있었다. 말하자면 냇가가 골목으로 바뀌면서 툭하면 노점단속 걸려 다라이 빼앗기기 일쑤였던 그 할매와 아짐들이 골목으로 무혈입성을 한 것이다. 그들의 이력까지 골목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한 30년쯤 연륜이 쌓인 셈이다.
낙지는 대부분 무안 현경, 망운, 해제에서 잡혀 나온다. 물때에 따라 시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아침이면 낙지골 사람들은 용달차를 몰고 직접 낙지를 사러 나간다. 장사의 시작은 흥정이다. 자칫 너무 비싸게 들여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팔수록 손해만 나는 경우도 생겨난다. 싱싱하지 않은 낙지를 가져왔을 때도 상황은 같다. 힘 좋게 생긴 놈으로 골라서 싸게 들여오는 것, 낙지골 사람들의 그런 방면에 ‘프로’다.

“남정네들은 흥정을 못한당께. 맘 푹 놓고 맡겨 놨다가는 죽어라고 낙지 폴아봐야 한나도 못 냉겨 묵어. 그랑께 내가 아침마다 따라 나가.” 여순희(39)씨의 말이다. 그리하여 그 골목은 새벽에 깨어나 하루종일 잠들지 않는다. 하루 장사 끝내고 눈 부칠 시간도 없이 곧바로 밤길을 달린다.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왁자지껄하다.
“바다에서 금방 건져다 논 것들인께 싱싱하제. 저것들이 힘이 겁나게 좋아갖고 심심하문 다라이를 넘어 부러.” 그 싱싱함과 파닥거리는 날것들의 비린내에 매료돼 사람들은 무안에 가면 낙지골목을 찾는다.

기사출력  2005-10-24 1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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